
글 | 박예원
향수는 한때 특별한 날을 위한 사치품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날 향은 일상의 일부가 됐고, ‘시그니처 향’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향은 단순히 냄새를 넘어 취향과 이미지를 설명하는 언어가 됐다. 이 기사에서는 향수 시장의 확장과 소비 방식의 변화를 통해, 향이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1. 향의 대중화
1-1. 특별함에서 일상으로

사진1 - 마릴린먼로 영상 (출처: 샤넬 공식 유튜브)
우리는 매일 아침 자신만의 향기를 고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향수’란 알코올에 향료를 녹인 액체로, 피부나 옷에 뿌려 향기를 내는 제품이다. ‘퍼퓸(Perfume)’이라는 자체는 라틴어 ‘연기를 통해(Per fumum)’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향수는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용 연기로서 향을 피웠다. 이후 유럽 귀족 사회에서는 관능적이고 강렬한 잔향을 선호해 동물성 향료를 많이 사용했다. 또한, 유럽 내부에서 조달하거나 동방 무역을 통해 들여온 귀한 식물들도 사용됐다. 이러한 유럽 사회를 거쳐 20세기 초 샤넬 N°5의 탄생과 함께 현대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이 향수는 마릴린먼로에게 “잠잘 때 무엇을 입나요?” 라는 질문에 “샤넬 Np.5 몇 방울만요.” 라고 답하며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이 향수는 여성성과 우아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향수는 오랫동안 사치품에 가까웠다. 명품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했고, 백화점 면세점 중심의 유통 구조 속에서 선물용이나 기념일 아이템으로 소비됐다. 그러나 ‘올리브영’, ‘시코르’와 같은 편집샵이 확산돼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며 향수에 대한 접근성은 크게 높아졌다.
1-2. 향을 고르는 시대
소비자들은 향을 구성하는 다양한 단계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설계하며 향수를 선택한다. 먼저 ‘탑 노트'다. 향수를 뿌린 직후부터 약 15분 정도 느껴지는 첫인상이다. 휘발성이 강한 레몬 계열이 주로 쓰이지만, 금방 사라진다. 다음으로 ’미들 노트'다. 뿌린 후 30분~1시간 뒤, 탑 노트가 날아간 자리에 나타나는 향의 본체라고 할 수 있다. 조향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테마가 담겨 있어 ‘하트 노트'라고도 불린다. 마지막으로 ’베이스 노트'다. 향의 마지막 단계로, 2~3시간 뒤부터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남는 잔향이다. 피부의 체취와 섞여 개인마다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외에도 부향률, 시야쥬, 계열 등 향수의 향을 결정 짓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2. 냄새가 된 이미지
2-1. 시그니처 향의 등장
‘시그니처 향'이란 특정 인물이나 공간을 대표하는 고유한 향기를 뜻한다. 최근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사용하는 향수를 공개하는 콘텐츠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저는 이 향수를 쓰는데요"라는 한 마디가 해당 제품의 품절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팬덤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사진2 - 태연 콘서트 향수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브랜드들도 향을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급 호텔과 대형 매장이 공간에 시그니처 향을 입히는 ‘센트 마케팅’을 적극 활용 중이다. 최근에는 콘서트 현장에 향수를 직접 뿌리는 방식으로까지 확장됐다. 가수 태연의 콘서트에서 공연장 전체에 특정 향수 향기를 퍼뜨린 사례는 향이 공연 경험의 일부로 포함됨을 보여준다.

사진3 - 딥센트 향 찾기 테스트 (출처: 딥센트 어플리케이션)
향수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향 계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대중화됐다. ‘내 향 찾기' 같은 온라인 테스트나 추천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각종 SNS에는 수천 개의 향수 리뷰 영상과 게시물이 올라오며,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만의 향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자리잡았다.
내 향을 찾는 것은 자기 탐색의 과정처럼 인식된다. 소비자들은 여러 향수를 시향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구체화해 나간다. 향을 고르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은 자신을 이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2. 보이지 않는 브랜딩
향은 시각이나 청각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감각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의식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만, 냄새는 즉각적이고 비자발적으로 감정을 건드린다. 후각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편도체와 해마에 직접 연결돼 있어, 특정 향기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거나 강렬한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 어떤 향이 특정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도 바로 이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인상 관리의 도구로도 기능한다.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청결함, 세련됨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압축돼 있다. 향은 외모나 스타일처럼 가시적이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옷이나 헤어스타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향으로 완성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2. “당신만의 언어를 조향해 드립니다.”
대전의 대표적인 향수공방 ‘책과 향기' 사장님께 이곳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향수공방이 어떻게 특별한 공간이 됐는지 얘기를 들어보았다.

사진4 - 향수공방 외부 사진 (제공: 책과향기 사장님)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대전 은행동에서 향수 공방 ‘책과 향기'를 운영하고 있는 8년 차 조향사 신선호입니다. 항해사로서 4년간 세계를 누비던 특별한 이력을 뒤로 하고, 2018년 대전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현재는 500여 곳 이상의 대학과 기업에서 조향 및 아로마테라피 강의를 진행하며, 향기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공방을 운영하시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A. 공방 오픈 초창기엔 대전 고객들이 주를 이뤘다면, 코로나 전후로 관광객의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 것을 느낍니다. 통계에 의해서나 설문에 의하면 대전이 최근 관광 도시로서 주목받으면서, 저희 공방도 그 흐름에 힘입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사진5 - 향수 공방 체험 사진 (제공: 책과향기 사장님)
Q3. 예전과 비교했을 때 향수를 찾는 고객들의 방문 목적에도 변화가 있나요?
A. 저희 공방은 오픈 때부터 향수를 매개체로 한, 만남의 공간과 체험장소의 제공, 그리고 이로 인한 행복감과 즐거움을 드리는데 공방 철학과 가치관이 잡혀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향수를 위해 방문한다기 보다는 재밌는 놀거리를 찾다가 방문하시는 것이 주된 이유이며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후에 향수의 매력에 빠지는 분들이 많음을 봅니다.
Q4. 고객들이 향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대중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합리적인 가격대가 가장 큰 고려 요소인 것 같습니다. 백화점의고가 명품 향수를 공방에서 직접 구현해 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하나를 만들러 왔다가 여러 개를 제작해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향수가 아직까지도 사치품으로 생각되는 경향과 함께, 필수품으로 자리 잡지 않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Q5. 최근 ‘나만의 향'이나 ’시그니처 향'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느끼시나요?
A. 물론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핸드메이드 퍼퓸 전성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향수 자체에 대한 수요도 아직까지도 굉장히 작다고 느낍니다. 남과 다른 옷을 입고 싶어하고, 나는 더 특별해! 라고 느끼고 싶어하는 개성적인 부분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봅니다. 향수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중 구매 가능 향수보다도 직접 만든 향수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겁니다.

사진6 - 향수 커스텀 완성 사진 (출처: 기자 본인)
Q6. 향이 자신을 표현하거나 브랜딩하는 수단처럼 사용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A.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긍정적이고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유명 브랜드의 유명한 향수의 향은 그만큼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친숙하면서도 아주 살짝 변화를 준 향들이 본인과 주변 사람도 좋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희 공방의 주 프로그램 커스텀향수 만들기(유명 브랜드 카피향 + 나만의 조합을 살짝)가 큰 인기를 끌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체험하면서도 퀄리티 높은 훌륭한 향수를 제공토록 노력하려 합니다.
향은 자신을 설명하고 기억되기 위한 전략이며, 동시에 타인에게 읽히는 신호다. 우리는 향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사회가 정해 놓은 이미지의 틀 안에서 향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뿌리는 것은 그저 향료가 아니라, ‘나'라는 잔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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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6-04-06